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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12/01/25 23:10
1. 직장생활하면서 본 가장 지루하고 일하는 게 비효율적이며 그러면서 기운은 많아 일을 쳐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꾸 벌이면서 하는 애들은 대부분 대학교 때 무슨 광고 동아리를 했거나 쓸데없는 아카데미 같은 걸 수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둘 게 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고선 이 또한 좋은 배움이었다고 수습하지 말지니, 이런 바보들과 팀을 이루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데 회사는 늘상 이와 같은 부류를 지속적으로 채용해 나를 피곤하게 한다. 물론 거기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밥벌이라는 비럭질이 기본적으로 두꺼운 얼굴을 하고 난 수치가 뭔지 모르오 하며 굴어야 할 때가 많으니, 사용자 입장에선 이리저리 나대며 살아온 애들은 최소한 그런 걸 수월하게 하리란 기대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표준적인 길을 걸어온 사람을 안전하게 택하고픈 마음도 있겠지. 

법대나 의대 같은 특수한 분과를 제외한다면, 사소한 테크닉이야 기본적인 습득능력만 있으면 금방 깨칠 수 있으니 대학에서는 좀 쓸데없는 걸 배우는 게 낫다는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상대 나온 애들, MBA 딴 애들이 딱히 실리적으로 머리를 굴리지도 못하며, 전공 지식을 능란히 써먹음으로써 나를 감탄케 한 적이 없다는 것도 이런 생각에 일조했다. 중고등학교 때야 이 광란자적 나라가 구도자의 자세로 꼼짝 말고 공부만 하라고 난리를 치니 워낙에 운신의 폭이 좁고, 그나마 제 머리로 뭐라도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게 대학 4년인데 그 시간을 취업 예비 학교로 쓰는 건 좀 아깝다. 음.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는 것 같다. 하기사 코난 오브라이언도 다트머스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 여러분, 만약 자제분께서 철학을 전공했다면 걱정을 좀 하셔야 할 겁니다. 그 친구들이 직장을 얻을 수 있을만한 곳은 고대 그리스 밖에 없거든요."

2. 어떠어떠한 집단은 특정한 성향을 띤다고 결론 내리면 무조건 무식한 놈이고, 세상 모든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뿐이라고 해야 교양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관찰 데이터를 무시할수록 있어보이는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럼 대체 얼마나 많은 표본이 모여야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또 하나, A라는 공통점을 갖는 사람들은 항상 B와 같은 말과 행동을 보인다는 걸 보고 그들에게 C라는 경향성을 이끌어내는 사람과, 그 모든 건 우연에 불과하니 그렇게 결론 내리는 건 치우친 판단일 뿐이라고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상식적이고 똑똑하다고 보는지? 누가 뭘 밑도 끝도 없이 싸잡자는 게 아니지 않나? 이런 바보들은 유타주의 투표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하면 유타주에도 대단히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으므로 너의 말은 편견으로 가득한 일반화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빈껍데기 교양인을 향한 유혹이 멍청이를 양산한다. 

3. 학벌로 인한 불필요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대부분은 학벌이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아무런 정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걸로 곡해하고선 나는 열린 사람입네 하며 뿌듯해한다. 학벌은 당연히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가 된다. 이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 절망적이다. 서울대가 최고고 연고대는 그 다음 최고이며... 하는 식으로 서열을 매겨 선을 긋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학벌은 저차원적으로는 교육에 어느 정도로 몰빵할 수 있는 집안에서 자랐는가에 대한 정보가 되고, 난폭하게 날뛰는 마음을 누르고 사소한 오락거리를 포기한 채 책상머리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된다. 시험 성적에는 돈과 인내가 작용한다. 직원을 채용하는 입장에서건 결혼 상대를 고르는 입장에서건, 이런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 사람이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정보가 된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패턴을 익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토익 점수 높다고 영어 잘하는 게 아니다, 내 친구는 토익 950점인데 외국인 앞에서 벙어리라고 투정한다. 잘들 나셨고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한데, X00점 이상의 토익 점수를 얻는 데에는 영어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통찰이 필요하지 않으며, 시험의 기본적인 패턴을 숙지한 후 어휘를 암기하는 등의 기계적인 작업이 더해지면 일정 점수 이상은 따라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익 850점 이상을 요구하는 기업은, 850점 이상은 영어 천재라는 가정 하에 기준을 마련해놓은 것이 아니라 그저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과 성실성을 보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그 알량한 기준을 위해 매년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돈이 낭비되고 있냐고 반문하려거든, 설마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쨌거나 기준은 필요하다. 

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업무란 기존의 패턴을 익히고, 거기서 더 발전시키고 개선할 사항을 찾아내 더욱 더 나은 형태의 패턴을 만드는 일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패턴을 진전시킨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이 짓도 잘할 확률도 높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아온 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또 단선적으로 서울대 출신이 일 제일 잘하고 연고대 출신은 그 다음으로 잘하고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1초만에 결론을 내려는 나는 꼼수다적 습성에 저항해 1분씩이라도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사회 생활을 하는 데는 정치성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그런 쪽으로 심히 덜떨어지고 서툴어 업무 수행 능력 전반에 걸쳐 낮은 점수를 받고 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거나 조지 6세적 말더듬이가 아닌 한에야, 공부하는 머리가 있는 사람은 그런 '패턴'도 금방 익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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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12/01/09 23:42
1.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가 재미있는 이유는 '놀아본 사람'의 층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다. 충동적인 행위를 부추기는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과거 얼마나 놀아봤냐에 따라 그 행위에 뒤따르는 잡다한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도 확연히 다르다. 레베카 홀 - 스칼렛 조한슨 - 페넬로페 크루즈는 그 레이어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완벽한 캐스팅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름만 보면 알 것이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위험하다. 조한슨도 엄청나게 섹시하고 드라마틱한 사람이지만 페넬로페 옆에 데려다 놓으니 그저 예쁘장한 금발 처녀 정도로 보였다. 야만에 가까운 원시적 본능을 흔쾌히 따르며, 동시에 그걸 반성하는 법 없이 살아온 여자 앞에선 조한슨도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넌 재능이 있으니 계속 사진을 찍어보라는 조언에 카메라를 들고 수백 빛깔의 바르셀로나를 프레임에 담던 조한슨이 찍은 가장 멋진 오브제는 별다른 포즈도 취하지 않고 담배 한 대 입에 문 채 벽 앞에 선 페넬로페였다. 애쓰지 않아도 그림이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보통 자신만 쾌락의 삶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동요케하는 경향이 있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꾀어내서가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들이 들썽거리는 마음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부끼다 결국은 사고를 치고 마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나름대로 짐승의 도정을 밟아왔노라 자신하던 조한슨은 스페인에서 잘생긴 남자친구(하비에르 바르뎀)를 하나 낚지만 그의 광기어린 뮤즈이자 전부인인 페넬로페를 마주하자 자긴 한참이나 멀었다는 걸 깨닫고 상심한다. 그러나 역시 놀아본 가닥이 없지 않은 그녀는, 자연스럽게 삼자가 서로의 연인이 되는 방법을 택하며 돌파구를 마련하고, 거기서 머무는 게 아니라 이 관계에서 얻어낼 건 다 얻어냈다는 데 생각이 이르자 깔끔하게 물러난다. 나중에 자서전에 넣을 만한 근사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든 한여름밤의 꿈과 같은 휴가다.

하지만 
네모진 블록을 열 맞춰 쌓아올리듯 살아왔고, 약간이라도 크기나 모양이 다른 블록이 주어지면 기겁하며 솎아내온 레베카 홀은 별 것 아닌 눈빛 하나에도 방향없이 흔들린다. '선수'의 습관적인 플러팅에 쿵쾅쿵쾅 들떠선 서툰 거짓말로 약혼자를 속이고,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게 자명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가 하면, 급기야 손에 오발탄까지 맞는다. 놀아본 사람은 상처 받지도 않고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해낼 때, 공무원처럼 살아온 규수는 총격의 피해자가 된다고 우디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 어르신 말씀과 국가의 강령을 너무 착실히 듣진 마시라. 이름이 알려진 양반이 약 좀 하다 적발되거나 도박으로 돈을 잃거나, 기혼 상태에서 서너명의 사람과 동시에 관계를 가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갑자기 돌격대로 변해서는 위법자를 처단하라며 붉은 깃발을 치드는 인간들은, 여름에 스페인에 휴가 가서 총 맞기 딱 좋다. 

2. 내가 좋아하는 걸 당신도 좋아하고, 그에 대해 당신과 내가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건 물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취향의 접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건 본질적인 것도 아니며, 취향 말고도 수십 수백가지의 경험과 과거, 유전자가 한 사람을 만드니 확대 해석은 아둔한 짓이다. 동료가 없는 선호를 갖는다는 건 외로울 수 있고, 나도 어쩌면 그게 심심해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걸 게다. 다만 난 내가 스콜세지를 좋아한다고 해서 <택시 드라이버> 팬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흥분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취향이 공격 당하거나 부정된다고 구슬피 울며 한구석에 찌그러지는 것도 어리석다. 남들이 뭐라건 나는 내 갈 길 간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태어난다는 건 누군가와 발맞춰 걷지 않으면 모든 길이 무너진다고 세뇌 당하는 것임을 나도 잘 알지만, 그런 바보같은 공작의 피해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는 적어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또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취향은 존중 받을 가치가 있고 취향엔 고하가 없다는 말 같은 것도 제2의 유재석이나 보험 판매왕이 될 야심을 품고 있지 않은 이상 하지 말자. 그렇게 모든 걸 개인의 기호의 문제, 선택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면 우린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믿어도 큰 문제고, 공격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서워 치는 연막이라면 슬프고, 그러는 게 교양있는 인간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이 뒷받침 되어 있다면 안쓰럽다. 세상엔 형편없는 취향이 존재하는 걸 넘어 수두룩하고, 그 취향에 기반해 심형래나 김난도 같은 자들이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모든 건 싸그리 무시해도 해 될 게 없다. 그래도 정 걱정이 된다면 내가 허락한다. 내 허락 하에 경멸해도 좋다. 나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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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11/12/27 23:00
1. KBS 기획다큐 김정일 3부작 재미있다. 모르던 바 아니지만 일성-정일-정은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삼대를 통해 장구한 현실 부정과 자기 기만, 민폐의 역사를 요약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기치 아래 기합을 넣어봤자 그런 식으로 문고리를 닫아 걸면(그러면서 현금 지원은 자꾸 해달라 떼쓰고)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흑사병과 페스트 중 뭐가 낫냐는 것과 비슷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비교적 성향이 덜 맹목적이고 말이 통할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보이는 아들들은 전부 왕좌의 게임에서 졌다. 바보의 철옹성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가장 정통적인 바보에게 정권을 승계하는 것인가 보다. 그 체계 내에서는 정합적인 사고이긴 하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모순이 없다 한들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얼간이 취급 받을 선택이 갖는 가치는 뭘까. 

최은희 인터뷰가 괜히 반가웠는데 난 왜 이걸 여지껏 아무도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지 않았는지 의아할 만큼 최은희-신상옥이 김정일에게 납치 당한 이야기는 기가 막히다고 생각한다. 영화광 독재자가 체제 선전용으로 문화 컨텐츠를 제작해 세계에 알리고자 당시 남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영화 감독과 배우를 납치해 전폭적인 지원 하에 영화를 찍게 한다? 살을 붙일 것도 없고 그냥 무조건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 신상옥이 이 장면에선 위에 헬리콥터가 떴으면 좋겠는데요, 하면 김정일이 헬리콥터를 불러주고, 열차폭파 씬이 난항인데요, 하면 진짜 폭파시켜버리라고 했단다. 둘이 과연 납치를 당한 게 맞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모든 음모론 또한 엄청나게 재미있다. 만들자. 만드는 거다.  

2. 개별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일반론을 들고 나와 그게 뭐 별 거냐는 사람을 보면 주먹을 날리고 싶다. 이를테면 나경원 발언의 천박함을 이야기하는데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하는 사람이나, 안진환의 형편없는 <스티브 잡스> 번역을 문제 삼는데 "원래 번역이 어렵고 100% 정확한 번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난 대꾸를 멈추고 삼엽충과 대화를 시도한 자신을 질타한다. 저런 코멘트는 나경원을 향한 그 어떤 평론보다도 맞는 말일 수밖에 없고, 단어 하나 하나 따져가며 번역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글보다 정확할 수 밖에 없다. 왜냐, "A는 A이며 또한 A는 B가 아니다" 수준의 논평이기 때문이다. 틀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뭐라도 주장하고 제시해야 틀릴 수 있다. 평생 틀려보지도 못할 잔챙이들. 

세상에 이런 저런 유형의 인간들이 있는 걸 누가 모르나? 번역의 어려움을 두 번 얘기할 필요가 있나? 1 더하기 1은 2라고 세상 다 통달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게 이 세상에 어떤 견해와 지식을 더하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첫째는 돌대가리라는 것, 둘째는 자신의 말로 말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대충 친숙하게 들리는 어떤 말을 내뱉을 뿐,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뭐라고 지껄였는지 안다 해도 그것 때문에 상대방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모를 것이다. 
하나 더. 저런 사람들이 보통 엄청나게 방어적인데 그 또한 우스운 일.애초에 아무 의견이랄 걸 가지도 있지도 않으면서 요새 구축은 뭐하러 하나? 이 쪽은 찔러댈 의사도 없는데 저가 먼저 몸을 웅크리는 꼴을 보면 난 없던 공격성도 움터 쇠꼬챙이 같은 걸로 쑤시고 싶어진다. 

3. 말짱할 땐 하지도 않을 얘기를 술의 힘으로 입에 담으면서 서로 투덕거리는 게 연말의 술자리라면, 그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맨정신으로 들으며 민망함을 감내해내야 하는 건 술 못하는 사람의 몫이다. 친구가 한 모금 마셔보더니 이건 모든 면에서 술보다는 주스에 가깝다고 선언한 칵테일을 1/4 쯤 들이키니 세상이 다 핑핑 도는 것 같았는데, 술의 목적이 오직 취하는 데 있다면 내 몸은 효율이 높다. 내가 만일 그 면구스러운 흥취에 동참할 의사만 있다면야 못할 것도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난 웬만해선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지. 술에 취하면 종래로 달변가이던 사람은 자신의 말에 더욱 취하고, 평소 말과 서름서름하던 사람도 용기를 내기 때문에 그 역시 말에 취한다. 해가 가는 시점은 늘 고단하며, 이룬 것 없는 한 해는 스스로를 애틋해하는 마음을 부른다. 이러니 연말의 술자리는 자기애의 바다일 수밖에. 모두 적당히 삼가고, 적당히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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