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2015.08.07 21:35

1. 2015년은 한국 여성들이 더 이상 혐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신변의 안전과 함께 성에 따른 차별 없는 공정한 대우와 지위를 인정 받는 시민이 되겠다고 선언한 상징적인 해인데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지금껏 살던대로 '적당히' 혐오하고, '적당히' 좌시하며 살고자 하면 욕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 태도를 달리 해 새로운 물살을 타든가 도태되며 욕을 먹든가 선택지는 둘 뿐인데, 여전한 폭력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인 가해자로 살면서 욕도 먹기 싫다면 이는 욕심이 과한 것이다. 


2015년은 예전 같으면 평등에 대한 이해가 평균 이상은 된다고 분류되었을 자들의 뒤가 털리는 해이기도 하다. <루이> "So did the fat lady" 에피소드에 대해 썼을 때도 이야기 했지만, 약자를 향해 피상적인 수준의 교양 있는 태도만을 겨우 유지하는 치들은 약자가 조금만 목소리를 내도 금세 당황하고 흥분하는데, 요즘 무슨 말만 하면 격앙되어서 고래고래 악을 쓰는 진중권 선생이 좋은 예다. 그들의 얕은 이해와 온정으로 커버 가능한 건 약자가 본인이 약자라는 사실에 잔뜩 겁을 먹은 채 움츠러들어 있을 때 뿐이라, 그네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의 부당함을 소리 높여 말하기 시작하면 불 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이 때 분노의 양상은 복합적인데, 어디 네 따위가 감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부당한 처사를 고발하느냔 노여움이 첫째고, 네가 전처럼 당하면서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나는 계속 교양 있는 사람으로 대우 받을 수 있는데 그 좋은 입지를 네가 훼방놓았다는 격분이 둘째다. 즉,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2. 각본가 디아블로 코디는 마크 마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치 보이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히면서 오랜 팬걸링 끝에 마침내 브라이언 윌슨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을 때의 흥분을 이야기 한 적 있다. 실망스럽지는 않았냐는 마론의 질문에 이어지는 코디의 답변과 둘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디아블로 코디 : 브라이언 윌슨은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방식이 너무나 순수하고 연막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 대중 앞에 서는 밴드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과 실제 브라이언 윌슨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마크 마론 : 자신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죠. 무언가를 내거른 후 어떤 특정 부분만 보여주겠다는, 그런 필터가 전혀 없어요. 

디아블로 코디 : 맞아요! 

마크 마론 : 바로 그런 점이 브라이언 윌슨의 인생에 많은 곤란을 야기했지만, 한편으론 대단한 축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러브 & 머시>는 겹막이나 숨은 의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무구한 목소리로 서던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과 높은 파도, 귀여운 여자아이들, 멋진 차를 주제로 한 천진한 서프 뮤직을 선보이던 초기 비치 보이스 시대를 지나, 보다 난해하고 정밀한 구축을 통해 인간의(그리고 자신의) 복잡한 마인드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브라이언 윌슨이 멤버들을 설득해 '펫 사운즈' 앨범을 만들었던 1960년대, 그리고 정신과 의사 유진 랜디의 부적절한 처방과 속박 하에서 평생의 반려 멜린다 레드베터를 만나 인생의 후반기를 다시금 도모했던 1980년대를 오간다. 


천재 뮤지션에게 폭력적인 아버지, 대중의 몰이해, 술과 마약,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기획사의 폭압, 악마같은 정신과 의사라는 다섯 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붙여준다면 정도가 지나친 클리셰 같겠지만 실제 브라이언 윌슨의 삶이 그러했다. 코디와 마론이 말하는 '순수'한 면모 때문에 그는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았으나 굴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남아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고 자신의 삶을 다룬 영화의 시사회도 참석하고 하니, 이 예민하고 마음 약한 천재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터프가이일지도 모르겠다. 중년의 브라이언을 연기한 큐삭은 "마이클 잭슨도 죽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도 죽었지만 브라이언 윌슨은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라고 했다. 그 말도 맞다. 

 

윌슨은 영화를 본 후 "지난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좋았던 때와, 과히 그렇지 못했던 때 모두를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 장면들입니다. 훌륭한 뮤지션들과 함께 너무나 즐겁게 작업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라고 밝혔고, 나 역시 가장 기대했던 게 스튜디오 씬이다.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던 브라이언 윌슨이 실력 있는 세션들과 실험과 협력을 거듭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그저 즐겁다. 디렉션을 듣고 이런 베이스라인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베이스 플레이어에게 "제 머릿 속에선 되던데요."라고 답하는 브라이언 윌슨에게서 끊임 없이 머리 속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구체적인 음악의 형태로 번역해 배열하려 애쓴 타고난 음악가의 분투가 읽힌다. 


실제로 밴드 경험이 있는 폴 다노가 오리지널 세션 테이프에 녹음된 브라이언 윌슨의 목소리를 참고해 제 몫을 해내고 있고, 개 짖는 소리, 경적 소리, 플룻, 클라리넷 연주가 스튜디오 안을 정신 없이 꽉 채우는 가운데 '펫 사운즈' 불멸의 명곡들이 차례 차례 울려퍼지니 비치 보이스의 팬이라면 누구든 벅차오를 것이다. 스튜디오 씬을 제외하면 영화의 대부분은 브라이언이 어떤 오해와 폭력 속에 살았는지에 초점이 가 있어 울적해지는데, 윌슨이 "영화가 내 어두운 시기를 어떻게 그리고 있건,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나빴다" 라고 이야기해서 더 슬프지만, 그래도 그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던 시기를 뒤로 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Love and mercy to you and your friends tonight"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족하지 않나 싶다. 감독 빌 포래드는 테렌스 멜릭 영화 두 편을 프로듀스한 사람답게 정도를 착실하게 따라가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성향의 사람이 브라이언 윌슨의 전기 영화를 만든 건 다행인 일이다. 

 

3. 어딘가 그럴싸해 보이고 문법적으로도 틀린 건 없지만 결국 아무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은 장황하고 텅빈 영어를 지양하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문장을 쓰자는 '플레인 잉글리쉬 캠페인'은 영국에서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공식 사이트의 '고블디국 생성기'를 누르면 캠페인이 없애고자 하는 문장이 한정 없이 만들어진다. 


http://www.plainenglish.co.uk/gobbledygook-generator

We're going forward with our plans to implement parallel reciprocal projections.

We now offer diplomas in ambient transitional capability.

Today marks the 20th anniversary celebrations of our interactive administrative hardware.

We need to get on-message about our knowledge-based modular mobility.

I can make a window to discuss your regenerated logistical options.

 

늦었지만 한국도 올해부터 여성운동과 함께 플레인 코리안 캠페인을 실시해서 2015년을 다양한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만드는 게 어떨까. 가장 쉽게 표적이 되는 건 최고사령관이고 그녀의 말을 번역하는 페이지도 등장했지만, 문장의 끝을 흐려 우물거리는 게 '덜 공격적인' 화법으로 통하는 현실과,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만든 기십장 분량의 기획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들을 압축하고 편집하면 몇 줄 남지도 않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난 나트륨 줄이기 운동보다 이게 더 필요한 캠페인 같다. 김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이고 나트륨 섭취는 줄여야 하는가? 이 자기모순적인 정부 주도 운동에 비하면 플레인 코리안 캠페인은 목표가 수정처럼 맑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 아무데나 '통합'과 '창조'를 붙이는 게 유행처럼 번져, 이전에도 충분히 흐릿했던 문장들이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무슨 플랫폼을 만들지 제시하라고 하면 '통합적으로 만사 다 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하는 게 근자의 전략가들이고, 어떻게 그런 플랫폼이 존재할 수 있냐고 하면 '창조적'으로 하면 된다고 하니, 당신 집 마당에는 사과나무가 있거나 혹은 없을 것이라는 점쟁이보다 이기기 어려운 무적의 고블디국이다. 

 

지겹도록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나는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고,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문장론에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장식적이고 현란한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 있고 싱거운 듯 담백하고 짧게 잘 쓰는 사람이 있을진대 어떠해야만 잘 쓴 것이라는 독단이 왜 나오는가. 그리고 경험상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약간만 어려운 단어를 써도 문자 쓴다며 정색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이었다. 잘못 읽히는 걸 피하려면 짧고 쉽게 쓰는 게 맞고, 그런 문장이 적절한 영역도 있지만, 세상 모든 글이 문해 능력이 부족한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하고자 하는 말이 없거나, 있긴 있되 그것이 말도 못하게 빈약한 한 줄 남짓의 외침인데 그걸 스무줄로 늘리려 들 때 발생한다. 회사에서 프로포절을 만들 때 내가 제일 많이 하는 얘기는 하나마나한 소리 좀 그만하자는 건데, 이렇게 사서 미움을 받으려는 이유도 상사와 동료들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르다" 수준의 당연한 얘기를 한자 개념어나 콩글리쉬 기운이 다분한 괴상한 업계 용어로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당연한 얘기는 좀 생략하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쓰자고 하면, 분량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보기에나 당연한 거지 상대방은 모를 수 있다, 업계 용어로 채운 '있어 보이는' 슬라이드가 몇장은 들어가줘야 한다,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난 그럼 청자를 그렇게 수준 낮은 집단으로 가정해서야 제안의 질이 높아질 수 없다고 반박한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자꾸 엇나가며 미팅을 지연시키니 부장이 "This is no time to bite the bullet with our homogenised reciprocal contingencies." 라고 했던 것 같다. 


신고
facebook twitter googleplus email

1. 궤도에 오른 코미디언이 욕을 먹을 때는 911이나 지체장애인을 농담의 소재로 삼았을 때가 아니라, 이미 했던 테러 농담과 뇌성마비아 농담을 반복할 때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과거처럼 스탠드업 투어에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렵고, 영화나 TV에서 비중 있는 역을 맡는 데에 몰두하게 되는데다(시트콤 <위트니>가 캔슬된 후 오래간만에 스탠드업 무대로 돌아온 위트니 커밍스는 "당신들이 내 쇼를 안 봐서 내가 다시 이 짓을 하게 된 거 아닙니까"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직접 농담을 고안하기 보다는 남이 쓴 농담 중 쓸만한 걸 가려내 딜리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커리어의 발전 방향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제임스 프랭코 로스트(Comedy Central Roast of James Franco)에 로스터로 출연한 아지즈 안사리는 로스터로 함께 자리한 실버맨을 향해 "오늘 제가 5년 전에 했던 칸예 웨스트 조크 때문에 저를 비웃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5년 전에 그런 농담을 한 적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만 사라가 5년 전에 했던 농담을 가지고 놀리지는 마세요. 사라는 지금도 그 농담들을 하고 다닌다고요!" 라는 말로 실버맨의 격조함을 지적했다. 


<라이브 앳 더 코미디 스토어>(이하 <코미디 스토어>)는 루이스 CK의 6번째 한 시간 짜리 스탠드업이다. 이름이 익히 알려진 코미디언 중에서도 1시간 짜리 스탠드업을 낸 이력이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걸 고려하면(30~40분 짜리 공연이 가장 일반적이다.) 적어도 1년 반에서 2년 사이에는 반드시 새로운 스페셜을 발표하는 그가 얼마나 미치광이 수준으로 다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라 실버맨은 마크 마론의 WTF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루이스 CK처럼 똑똑한 사람이라면 [난 8개월 후 새로운 스탠드업 스페셜을 찍을 거고 지금부터 그 농담들을 짜려고 해.] 라고 할지도 모르죠. 아니다, 3개월만에도 써낼 수 있을 거예요. CK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작업 속도가 느린 코미디언입니다. 그 정도로 다작을 하지는 못해요."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분량이 전부는 아니고, 틱 노타로의 30분 짜리 스탠드업 <리브>는 난다긴다 하는 코미디언들조차 오픈 마이커로 보이게 만들 만큼 훌륭했지만, hour-long 스탠드업에 도전하는 코미디언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은 30분짜리 스탠드업과 1시간 짜리 스탠드업은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필요한 농담의 갯수와 에너지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여섯 편 중 네 편은 연출, 각본, 편집, 주연을 겸하는 TV쇼 <루이>를 찍으면서 제작했으니, 본인이야 늘 자신을 '정액 같은 시럽을 바른 뜨거운 시나번을 자각 없이 몇 개 씩 처넣으면서 소파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과체중 중년'으로 포지셔닝하길 좋아한다지만, 속을 게 따로 있다 하겠다. 


2. 

Live at the Comedy Store (2015)

Oh My God (2013)

Live at the Beacon Theater (2011)

Hilarious (2010)

Chewed Up (2008)

Shameless (2007)


전작인 <오 마이 갓>이나 <라이브 앳 더 비콘 시어터>는 코미디언이 설 수 있는 가장 큰 무대에서 공연되었고, 커리어의 정점에 선 코미디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자신만만함이 어우러져 가히 스탠드업 블록버스터라 이를 만한 콘서트 필름이었다. 반면 <코미디 스토어>는 성격이 다르다. 말하자면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나 공연하던 빅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대학로 학전 블루에서 공연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탠드업 스페셜을 촬영할 공간으로 어찌하여 이런 소규모 클럽을 고르게 되었는지, 판매 개시와 함께 팬들에게 보낸 장문의 메일은 그가 코미디에, 그리고 클럽에 바치는 일종의 애가에 가까울 정도로 절절하다. 한편으론 그렇게 길게 쓸 필요가 대체 무엇인지..아, 아닙니다. 


지금은 코미디 센트럴을 제외하고는 스탠드업을 비중 있게 방영하는 채널 자체가 드물지만, 스탠드업이 정말 '잘 나가는' 예술 형식의 하나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부흥기를 주도하며 내로라 하는 코미디언들이 다투어 무대에 올랐던 전설적인 클럽이 몇 군데 있는데 코미디 스토어는 그 중 대표 격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클럽이 코미디언들을 무대에 세우기 전 간단한 오디션 과정을 거치는데, 코미디 스토어는 단 한 번도 CK를 통과시켜 준 적이 없는 콧대 높은 곳이기도 하다. 끈질기게 CK를 탈락시켰던 클럽의 오너 밋치 쇼어가 폐경색으로 사망하고, 클럽을 물려 받은 오너의 딸이자 CK의 열렬한 팬이었던 신임 대표가 CK가 무대에 서는 것을 허해 이번 촬영이 가능했다고 한다...는 건 그냥 내가 지어낸 거짓말이고, CK는 이제 그런 오디션 과정 쯤은 생략할 수 있는 사이즈의 인물이라 그가 먼저 촬영을 제안했고, 코미디 스토어의 스태프들은 흔쾌히 응하며 협조했다고 한다. 젊은 CK에게는 꿈의 무대에 가까웠고, 항상 어딘가 주눅이 들고 긴장하게 만들었던 장소가 코미디 스토어인데, 이번 스탠드업 역시 비슷한 수준의 조바심과 떨림 속에서 공연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3. 지금껏 한 번도 다른 이에게 오프닝 액트를 맡긴 적 없는 그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드레드 헤어를 한 클럽 코미디언 제이 런던에게 공연의 운을 띄우게 한 순간부터, <코미디 스토어>는 그의 커리어에서 이례적인 작품이 될 것을 직감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오 마이 갓>이나 <비콘 시어터>가 앞서 말한 것처럼 일종의 블록버스터라면, <코미디 스토어>는 그야말로 클럽에 어울리는 농담들로 이루어져 있다. 농담의 기본 바탕이야 CK의 기본 스타일에서 벗아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OOOO하게 행동하는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사람들이 OOOO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다는 게 믿어집니까?", "아이들을 기르는 데 내 영육을 갈아넣고 있는데 이 건방진 꼬마들이 오늘 저한테 뭐랬는 줄 아십니까?"를 근간으로 한 '관찰'이 중심이 되는 코미디와, 나이가 들수록 삶이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어지는지 과장하는 자기 파괴적 농담이다. 


다만 대규모 극장에서의 스탠드업이 빈틈이라곤 없는 완벽한 기승전결 서사를 자랑하는 웰메이드 농담의 향연이었다면, <코미디 스토어>는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가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때가 많고, 그렇게 흘러간 농담이 아무 데에 미치지 못해도 관계치 않는 듯 하다. 갑자기 웬 상황극을 시작하기도 하고(물론 엄청나게 웃기다.), 평소의 'CK 스탠다드'를 감안하면 더 디벨롭시켰을 것 같은 농담도 몇 있다. 그러나 CK의 말마따나, 고된 하루를 마친 후 더 이상 직업인이길 그만두고 한 명의 착실한 시민인 척 하는 것도 집어치우고 클럽에 가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헛소리를 주고 받으며 배를 잡고 웃는 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코미디 클럽이라면, <코미디 스토어>는 그런 관객들을 앞에 두었을 때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연이다. 


4. 이걸 다 번역할 필요는 없겠지만 읽으면서 희부연 연기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클럽에서 시답잖은 낄낄거림 한 번을 손에 쥐어보려 고군분투했던 풋내기 CK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그가 코미디를 얼마나 몸이 달 만큼 사랑하는지 온 마음에 와 닿아 옮겨 본다. 괄호 중 ** 표시로 시작하는 건 내가 단 주이고, 마지막 단락의 추천에는 반만 동의하고자 한다. 


<코미디 스토어>는 제 여섯 번 째 한 시간 짜리 스탠드업 스페셜이고 만들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작년에는 새 스페셜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업 과정 자체가 굉장히 그리웠거든요. 이번 스탠드업은 제가 요 몇 년 사이 냈던 작품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대규모 극장이 아닌 클럽에서 공연한 걸 촬영했거든요. 전 물론 극장에서 공연하는 걸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 건 리차드 프라이어의 공연 영상이었고, 코미디언이 되어 큰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 게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대극장에서 공연하면 농담의 소재와 아이디어를 확장할 수 있고, 퍼포머로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됩니다. 수천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한다는 데서 오는 압박 자체가 퍼포머에게는 언제고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때문입니다. 투어를 돌며 수많은 콘서트홀에 설 때마다, 각각의 도시가 지닌 저마다의 공기와 지나온 시간들을 짧게나마 깊게 들이마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건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한 경험입니다. 


그런데 코미디 클럽은 또 다릅니다. 클럽은 코미디가 탄생한 동시에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공간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전 링컨이 미국 최초의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절로 돌아가 보자면, 미국인들은 밤에 인파로 붐비는 작은 클럽에 모여 멍하게 취한 채 우스꽝스럽고, 뒤죽박죽인 데다 종종 역겹기까지 한, 그러다가 환희를 자아내기도 하는 온갖 엉뚱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나누길 즐겼습니다. 장광설과 과장된 어법, 부러 진실을 호도하는 논증과 협잡, 말장난이 넘쳐났습니다. 이게 바로 클럽이고, 바(bar)이고, 늦은 밤이었습니다. 거기선 누구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긴 하루를 보낸 후 일터를 떠나, 시민이라는 옷도 벗어던졌을 때, 우리는 코미디 클럽에 가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그 어디에서보다 크게 박장대소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제가 30년 가까이 해 온 스탠드업이기도 합니다. 최근 9년은 대극장에서(심지어는 대형 경기장에서) 주로 공연해왔지만 전체 경력에서 보자면 클럽에 선 게 압도적으로 더 많죠. 전 18살이었던 1985년, 보스턴 코미디 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보스턴은 스티브 스위니, 스티븐 라이트, 배리 크리민스, 론 린치, 케빈 미니, 돈 게빈 같은 훌륭한 코미디언들이 터를 닦은 곳이기도 합니다. 전 대학을 포기하고(아직도 후회합니다.) 온갖 거지 같은 일을 하며(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매일 밤 보스턴에 위치한 코미디 클럽을 돌며 뭐라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코미디언의 공연을 보았고, 제발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다 1989년, 전 뉴욕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코미디 클럽 씬은 폭발적인 부흥의 시기를 맞았고 토요일 밤이면 무대를 여덟 번은 설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레이 로마노가 아홉 번 선 게 기록일 거예요.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이 맞이한 실로 황홀한 시대였죠. 멋진 코미디언들이 사방에 넘쳐났습니다. 콜린 킨, 마이크 스위니, 조이 베이하, 존 스튜어트, 찰리 바넷, 레이 로마노, 데이브 샤펠, 크리스 락, 브렛 버틀러, 브라이언 리건... 


이십대 초반에는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온갖 클럽을 전전하며 보냈습니다. 돈벌이는 형편없었죠. 주중에는 쇼 한 번에 약 10달러, 주말에는 50달러 정도 벌었던 것 같습니다. 매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녀야 했죠.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금요일에는 쇼가 두 번이 있고 토요일에는 세 번 있었습니다. 쇼의 오프닝을 맡는다면 한 주에 700불 정도 벌 수 있었고, 헤드라이너라면 2,500불에서 3,000불까지 벌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전 미국 전역의 클럽을 돌며 일했고, 실제로 그 클럽들을 하나 하나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천장이 낮고 조명은 어두침침하고 냄새도 좀 나는 작은 클럽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신시내티의 '고 바나나', 롱아일랜드의 '브로커리지'(여긴 아직도 있습니다.), 시더 래피즈의 '펭귄스', 시애틀의 '코미디 언더그라운드' 같은 곳들이지요. 물론 지나치게 멀끔하고 도시적인, 체인 형태로 운영되는 코미디 클럽도 있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그런 클럽은 쇼핑몰 안, 선글라스 매장 옆에 있고 막 그랬어요. 


전설적인 클럽들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빌 힉스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위대한 클럽들 말입니다. 미니애폴리스의 '애크미', 애틀랜타의 '펀치라인', 샌프랜시스코의 '콥스', 휴스턴의 '래프 스탑' 시카고의 '재니스' 같은 곳들이죠. 그야말로 코미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클럽들이었습니다. 애크미 같은 데서 한 주 동안 공연을 하면, 그 짓을 향후 몇 달은 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았어요. 20대 중반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전 제 인생의 전부를 그런 클럽에서 보냈습니다. 


이후 LA로 옮겨,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쇼 비즈니스와도 밀접한 코미디 씬을 발견했습니다. 놈 맥도날드, 찰스 플라이셔, 로버트 쉬멜 같은 이름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LA에는 커피하우스를 비롯해 '라르고' 같은 멋진 공간이 많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원하는 건 뭐든 다 할 수 있는 곳들이요. 앤디 킨들러, 케이시 그리핀, 패튼 오스왈트, 블래인 캐퍼치, 크레이크 앤톤, 로라 키틀링어 같은 코미디언들이 바로 그곳에서 대단한 쇼를 펼치곤 했습니다. 


전 '라르고'나 '엠바' 같은 곳에서 20분 분량의 새 농담을 짜서 공연하곤 했는데, 오픈 마인드의 젊은 관객들은 그런 농담에도 지지를 보내주었지만 그렇다고 전 그 농담들이 다 웃기다고 믿진 않았습니다. 그 관객들은 어디까지나 '얼터너티브' 코미디 씬의 관객들이니, 전 보다 보편적인 캐릭터의 관객들이 자리를 채우는 클럽에 가 동일한 공연을 하고선 20분 짜리 작업물 중 딱 농담 3개만('보편적인' 관객들마저도 웃길 수 있는) 남겨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코미디 스토어'가 있었죠. 전 그 농담 3개를 가지고 갔습니다. 어쩌면 그 세 가지 중 하나에라도 웃어주는 관객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코미디 스토어는 저를 가장 위축되게 만드는 클럽이었습니다. 코미디 스토어는 어렸을 때 레니 브루스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코미디 클럽이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클럽이었으니까요. 검정 비닐 소파와 의자, 붉은 포마이카 단상.. 앤드류 다이스 클레이는 바로 그 무대에서 15명의 관객을 두고 스탠드업을 했고 정말이지 끝내주게 웃겼습니다. 코미디 스토어는 쇼 비즈니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튼 버얼이 목 언저리에 나비 넥타이를 묶지 않은 채 느슨히 두르고 있는 쇼 비즈니스, 이마를 닦으면서 "오늘 관객들은 영 웃기기 힘들군요." 할 때의 쇼 비즈니스, 주차장에서는 웬 남자가 두들겨 맞고 있는 쇼 비즈니스 말입니다. 코미디 스토어는 리차드 프라이어가 경험을 쌓은 곳이자, 레터맨이 자리를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곳입니다. 조지 칼린, 에디 머피도요. 언젠가 마크 마론은 코미디언 샘 키니슨이 어떻게 자기 침대에 오줌을 싸게 됐는지 그 뒷얘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당시 마론과 키니슨은 심각한 약물 중독자였고 함께 어울리며 술과 코카인에 취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어느 날 마크가 친구를 픽업하러 공항에 갔다가 아파트에 돌아와보니 키니슨이 자기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마크는 이제 이 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고.) 이게 바로 코미디 스토어 입니다. 코미디의 멋들어지게 어두운 이면이죠. 


코미디 스토어는 미국의 클럽 중 제가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유일한 클럽입니다. 전 활동하면서 여러 클럽에서 오디션을 봤고 때로 낙방하기도 했지만 그러고나면 언제고 다시 돌아가 오디션을 치렀고, 결국은 통과해 무대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코미디 스토어는 달랐어요. 절대 저를 통과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냥 그들에게는 맞지 않는 코미디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이후 이름이 알려져 오디션 프로세스 자체를 건너뛸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코미디 스토어에서 공연을 하지 못했습니다. 클럽에 걸어들어가 곧장 무대로 향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기 전까지는요. 


그렇다면 저는 왜 코미디 스토어에서 새로운 스탠드업 스페셜을 촬영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30년 간 코미디를 해온 저를 여전히 들뜨게 하는 것은 공연이 잘 흘러가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코미디 스토어에서 공연하면서 이게 완전히 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할지도 모르겠다고요. 한 가지 일을 저 정도로 오래 한 사람이 이런 불안과 긴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전 정말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여 이번 해에 진행한 투어 중 코미디 스토어의 '메인 룸'에서 공연으로 시작했고, 클럽의 모든 스태프들은 정말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과 일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여기서 새로운 스페셜을 촬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폴리 쇼어와 그의 가족들은 정말이지 따뜻하게 저를 맞아 주었고 그 무대에서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 더없이 영광스럽습니다. 이렇게까지 길게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요는, 제가 클럽 무대에 맞게 클럽에서 새로운 농담들을 짰다는 것입니다. 뉴욕의 여러 클럽을 돌며 LA로 가 라르고, 임프랍, 그리고 마침내 코미디 스토어의 무대에 서면서 늦은 밤 코미디 클럽을 찾는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기 적절하도록 농담을 손봤습니다. 그것만이 이번 스탠드업을 촬영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화 <보이후드>를 보세요. 영화로서 뿐만 아니라 문학으로서도 탁월한 작품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숲속으로>도 보세요. 주의를 기울이면, 인생은 대단히 혼란스러운 것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https://louisck.net/purchase/live-at-the-comedy-store 


신고
facebook twitter googleplus email

잡기

2015.02.19 00:47
1.

여성들은 1920년에 이르러서야 참정권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게 고작 94살 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뜻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는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나이가 많은 입주자가 최소 세 명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게 아주 근자에까지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이었다는 걸 떠올려 보세요. 심지어 우리는 그 같은 가정폭력 행위를 따 티셔츠의 이름을 짓기까지('와이프비터'(Wifebeater)라는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가리킴) 합니다. 세상에나, 아내를 쥐어패는 자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의 의류가 존재하다니요? 심지어 어쩐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이를 불쾌해하지도 않습니다.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한 한 주부가 "남편이 와이프비터 하나만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라고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제발 그런 끔찍한 걸 캐주얼하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남편이 오늘 상의로는 와이프비터를 입고 아래에는 아동살해범 반바지를 입었는데요"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 루이스 CK, 2014년 <Saturday Night Live> 오프닝 모놀로그 中


2.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를 좋아한 적이 없음에도 <와일드>를 고대한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연기한 주인공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난 이렇게 비전문가가 어느 날 갑자기 마력과도 같은 힘에 이끌려 괴물같은 배낭을 메고 숲과 사막을 밤낮없이 걷는다든가(<와일드>,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벌거벗은 야생의 자연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체득한 바를 기록한 에세이라든가(<트래커>, 톰 브라운), 죽음을 무릅쓰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산악인들의 도전기(<희박한 공기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검은 고독 흰 고독>, 라인홀트 메스너) 따위에 조건 없이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길을 떠나기 전 장비를 챙기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길면 길수록 좋다. 가령 <와일드>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모텔에서 짐을 꾸리며 쩔쩔매는 씬이나, <나를 부르는 숲>에서 빌 브라이슨이 배낭과 야영 도구를 구입하다 패닉에 빠지는 구절 같은 걸 나는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다. 유두가 쓸리고 발톱이 빠지고 물집으로 온몸이 엉망이 되었다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말해 무엇할까, 홀린듯이 읽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네르바 성냥갑>에서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몸소 체험해 보려는 노력은 않는 사람이 가진 애정이란, 어딘가 뒤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가령 축구 얘기만 나오면 얼굴을 붉히면서 열변을 토하지만 직접 공을 차지 않는 사람, 음악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길 즐겨하면서 서툴게라도 건반 한 번 눌러보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에코가 하려는 말이 뭔지는 알지만, 스포츠나 음악처럼 수동적인 관람과 감상 자체가 크나큰 오락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는 애정의 진의를 가리는 데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이킹을 향한 내 이 괴상한 선호는 잘라 말해 가짜가 아닐는지. 난 회사가 이사를 가면서 하루 20분씩 더 걷게 된 것에 대해 6개월 넘게 불평을 한 사람이고, 자의로는 등산을 나선 적이 없으며, 억지로 무리에 속해 산에 가게 되더라도 등산로 입구에서 파전을 먹고 후퇴하는 일정을 제안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무자비함에 대해 노래한 시와 소설은 얼마든지 있는데 논픽션 쪽에 이렇게 무게를 두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에코 말마따나 '도착'이라고 결론짓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와일드>는 소재만으로 내게 높은 점수를 따고 시작했지만 장 마크 발레 특유의 ADHD적 연출과 "마일드" 아니냐고 비꼬고 싶은 영화 막바지 프로타고니스트의 깨달음, 지나치게 너그러운 자기 용서 때문에 평단 만치 호평은 하지 못하겠지만 몹시 오랜만에 사이먼 & 가펑클을 며칠 내리 되풀이해 들었다. http://youtu.be/pey29CLID3I


3. 기질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 내던져지기 전까지는 본인조차 자신의 행동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저 않고 확답을 내렸어도 자신의 실제 행동은 예측을 빗나가기도 한다.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입학하기 전, 이미 학교를 12년이나 다녔음에도 난 내가 어떤 종류의 대학생이 될 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얼마 만큼의 열의를 가지고 수업을 듣고 페이퍼를 쓸 지, 세간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돈도 안 될 게 틀림 없는 텍스트들을 진득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는 뜻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과 내 개인의 시간 중 무엇을 더 중시할지, 일에서 얼마 만큼의 '의미'를 발견해야 만족하는 인간일지, 속한 조직과 동료의 비도덕성을 어느 선까지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을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변치 않았던 건 고질적인 게으름과 아마도 그로부터 연유할 잔머리, 경직된 규율에 대한 거부감, 단체 행동을 지시 받으면 자세한 내용을 듣기도 전에 짜증부터 낸다는 것 정도인데, 이걸로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고, 영육을 태워 일해봤자 그 끝에는 암과 가족들의 절망 정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것 같다. 일은 일일 뿐이지 거기 무에 대단한 의미와 보람이 있을까 싶어 스위치를 끄고 기계처럼 일하다 퇴근하면(되도록 정시에) 다시 인간이 되는 길을 도모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기질의 발로이나,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하게 튀어나오는 건 기질 그 자체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선비 같은 사람이었고, 훨씬 더 '의미' 지향적인 직장인이었으며, 스위치를 꺼도 끈 게 아니었으니, 스물너덧 시절 건방지에 계획한 것과 현실은 달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이미 스위치를 껐다고, 영혼 없이 한국인 직장인의 전형을 연기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조차도 평균보다 훨씬 더 의미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매분매초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이건 상부의 강압이나 더 큰 보상에 대한 약속, 수도자적인 자기 제련 따위와 무관하게 발현된다는 점에서 그냥 제 무덤 파는 기질일 뿐임을 알 수 있다. 


회사는 회사고 자아 실현은 퇴근한 이후에 하라거나, 혹은 회사에서도 약간량의 자아 실현을 꿈꾸라거나, 회사야말로 자아가 실현되어야 하는 현장이라느니 하는 조언자로 내가 적절하지 않은 것도 순전히 내가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닌 까닭인데, 그래도 굳이 이야기하자면 모든 일에는 결국 균형이라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종일 본인이 무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기계처럼 소모 되어도 매달 틀림없이 급여가 입금되기만 하면 그만인 산뜻한 성정을 타고났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엄청난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정적으로 밥벌이라는 것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자비 없이 요구하는 탓에, 제 아무리 스위치를 켜고 끄는 데에 능하다해도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순간은 언제고 찾아올 것이다. 어느 선까지 개인의 성취와 의미를 탐할 것인가는 본인이 결정할 몫이나, 그것과 철저히 분리된 채 살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면 '인간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신고
facebook twitter googleplus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