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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12/05/06 00:47
1. http://youtu.be/ogYDUmIigw0
<그리즐리 맨> 이 미친놈 같은 영화는 어떻게 된 게 스무 번을 봐도 재밌다. 미친놈 구경하는 재미와 미친놈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 생각이 없는 헤어조크 때문인 것 같다. 

2. 올초 일이 몰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생활을 계속 하긴 했지만 처음 석 달 글을 네 개 밖에 안 쓴 줄은 몰랐다. 과연 한동안 안 썼더니 쉬운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괴상하게 쓴다. 이러니 "맞춤법 같은 건 사소한 테크닉에 불과하고 대신 내 글은 내용이 굉장하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테크닉을 몸에 익히지 못한 건 안 읽고 안 써서지 내용에 공을 들이느라  제쳐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스펠 나치 같은 발언은 나부터도 지겨워서 그만하고 싶지만 자꾸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보이니 넘어가지를 못하겠다. 맞춤법 지적 당하면 내가 아는 선배는 국문과 박사인데도 맞춤법 자주 틀린다며 응수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본다. 맞춤법 얘기하는 중인데 당신이 무식한 선배와 알고 지낸다는 얘기를 갑자기 왜 꺼내는지 모르겠다. 

3. 어떤 정보는 제때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조금 덜 치밀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육식이 야기하는 환경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리프킨이 <육식의 종말>을 썼던 시절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했는데 계속 리프킨을 레퍼런스 삼아 육식을 이야기 하는 건 지성적인 게으름 내지는 리프킨을 향한 정서적 지지 밖에 될 수 없다. 담의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가정해도 <육식의 종말>은 전혀 잘 쓴 책이 아니라는 것 또한 문제다. 리프킨의 육식에 대한 해석은 최근 이 나라 기독교인들이 레이디 가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흡사하다. 주장을 요약하면 '모두를 집어 삼킬 절대악 육식, 그 모든 것의 완전무결한 해결책 채식' 쯤 되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정교한 논증과 당장에 사람들을 자극해 행동하게끔 만들 수 있는 문장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리프킨은 '항상' 후자에 속하는 글을 썼고 바로 그렇기에 전자에 속하는 저자들보다 훨씬 유명해질 수 있었으며 오는 7일 많은 돈을 받고 내한도 한다. 넓게 파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방대한 양의 서사를 들려주는 재주꾼이나 단지 그 깊이가 1인치다. 이런 저자에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지만 대중이 그 문제의 경중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확 불을 지피듯 이게 지금 심각한 문제라고 알려주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 다음 그/그녀를 버리는 것이다. 

만약 <육식의 종말>을 읽고 먹는 것의 문제에 관심이 생겨 매 끼니와 주전부리가 환경적으로 덜 유해하고 생명을 무자비하게 거두는 종류의 것이 아니길 바라게 되었다면 그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춘 채 리프킨의 논리에 따라 육식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레이디 가가 공연을 보면 동성애자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비슷해지니(나야 그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길 바랐다만) 그보다 견고한 주장을 찾아보는 게 좋다. <잡식 동물의 딜레마>도 있고 <죽음의 밥상>도 있고 <고기를 먹는다는 것>도 있다. 뉴욕 타임즈의 마크 비트먼 칼럼도 괜찮다. 그리고 난 이효리가 귀엽고 좋지만, "난 쥐뿔도 모르지만 이게 옳은 것 같아서" 라고 비장하지 않게 실천해 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녀가 어딘가에서 얘기한 채식을 시작한 이후 화학 성분의 화장품을 바르면 얼굴에 뭐가 난다는 발언은 내가 최근 몇년 간 들어본 소리 중 가장 무식한 축에 속한다. 일단 천연/화학 화장품을 입에 담기 시작해서 무식해지지 않을 방법이 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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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단상

2012/04/24 23:50
1. 예전에 회사를 옮기면서 '보라색 스타킹을 신고 여행을 떠나고픈 몽상가'라는 메신저 대화명을 쓰는 상사 밑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기뻐했는데 이제는 '난 내가 정말 좋다. 더 예뻐하고 아껴줘야지'라는 대화명을 쓰는 상사 밑에서 일한다. 산다는 게 이토록 맵고 시린 일이다. 

2. 매일 같이 꼭두 아침 우울한 빌딩에 들어가 온전히 하루를 바친다는 게 진짜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긴 하지만 정시 퇴근이 가능하다면 상황이 그렇게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6시부터 내 시간이라면 할 수 있는 게 꽤 많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해가 길어진 때 제 시간에 퇴근해 나오면 바깥이 너무 밝아 잠들기 전까지 책 한 권도 통째로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헌데 이 나라에서 매일 그렇게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얼마나 되려나. 야근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려 모든 걸 다 잘 되게 만들어줄 거라고, LG 스마트폰 사업부마저 살려낼 거라고 믿는 사람이 지천인데. 

그래서인지 내가 회사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은…" 이다. 굵게 굵게 가지를 잡는 과정인데 최종적인 현실화 단계에서나 겨우 걸릴까 말까 한 지엽적인 문제를 내세우며 진척을 더디게 하는 사람, 기획 회의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이런 걸 봤는데" 라는 얘기를 꺼내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의 경중을 따져 순위를 가로세운 후에야 시간과 수고를 써야 할 텐데 그걸 못하는 사람의 맥을 끊어주는 게 회사에서의 내 역할인 것만 같다. 친구나 애인과는 먼지보다 사소한 얘기만 해도 좋은데 회사 사람들하고는 중요한 얘기만 하고 싶다는 게 재미있다. 회사에서 중요한 얘기는 다 하니 친구들 만나서는 마음이 단출해져 잡담이나 하는가 보다. 

3. 인턴이나 신입사원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낮은 한숨이 난다. 말을 비교적 잘 알아듣고, 맞은 편 팀 아무개와는 달리 난 배울 의지가 있는 녀석입네 온몸으로 말하는 아이조차 그저 언젠가 동란 때 길에서 잃어버린 조카들 중 하나 같다. 나한테 가져오기 전에 찬찬히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라고 말해도 앞뒤 안 맞는 문장이 거진 반인 보고서를 들이대고, 그에 대해 지적하면 입을 삐죽거리는 걸 볼 때면 '요즘 애들'이라고 싸잡고 싶어진다. 누가 들으면 직장생활 30년은 한 줄 알겠다고 비웃음이 비어져 나오겠지만, 내 문제가 조로인 것 또한 새삼스럽지는 않을 테고. 별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에 진주알 같은 이를 보이며 재밌다고 꺄르르 나자빠지는 걸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아득해진다. 너희들을 어쩔 것이냐. 

4. 면접을 볼 때마다 받은 질문이 있다. 도덕적인 결벽이 심할 것 같은데 믿는 바에 어긋나는 일을 만나도 잘 해낼 수 있겠느냐, 좋아하는 것만 관심 둘 사람처럼 보이는데 취향과 먼 프로젝트가 주어져도 성심껏 임하겠느냐, 두 가지다. 자소서 어디에도 선비같이 군 적 없건만 왜 자꾸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지만, 쓸모 없는 질문이다. 마치 내게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 듯이 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고, 그 뻔한 대답을 공유하기 위해 면접 시간이 낭비되는 건 누구에게도 득이 아닌 까닭이다. 내가 정직하게 답할 리 없고, 정직하게 답하는 걸 그들도 원치 않을 질문이다. 신념이니 선호니, 대체 회사가 언제부터 그런 편의를 봐주는 곳이었나. 

이 질문을 통해 사측에서 기껏 얻을 수 있는 소득이란 우리는 너의 성격적 결함을 간파하고 있다는 일종의 판단의 과시인데, 그 역시 내 쪽에서 인상적이지 않다고 하면 끝나는 얘기다. 단지 내가 비굴한 향리처럼 웃으며 아닙니다요, 잘 할 수 있습니다요, 하는 걸 보고 싶었던 거라면 한심하고, 뻔할 수 밖에 없는 대답을 얼마나 세련되게 다듬어 순발력있게 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면 질문의 난이도가 이보다는 높아야 한다. 해도 될 말 아닐 말 구분을 못하는 예전 회사 과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렇듯 파다한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뽑은 회사에서 실무진 면접을 본 후 이런 얘기가 오갔단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면 팀장이 아니라 회사 대표가 시켜도 안 할 것 같다고. 아, 말 많네 진짜. 

결벽 얘기는 이후로도 계속 나왔는데 이 또한 우스운 것이 말단 화이트 칼라직이 부도덕한 결단 씩이나 내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내 결벽이 발휘되는 순간이라야 봤자 '있어 보이는' 문장이 떠오르고 그걸 좋아할 몇몇 얼굴도 동시에 떠오르지만 평이한 문장으로 담백하게 말하는 게 옳은 일이니 생각을 고쳐먹고 속으로 이미 쓴 글줄 몇 개를 지울 때 뿐이다. 완성된 걸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것이 이런 고민 끝에 완성된 건지도 모르니 어찌 보면 내 개인의 쓸데없는 고집이자 피곤한 성미인 것은 맞다. 가끔씩 "부대리, 타이틀을 좀 더 섹시하게 뽑아봐" 라고 세상 그만 살고 싶은 주문을 하는 상사가 있다지마는, 난 포기가 빠르고 봬기와는 달리 융통성이 있어 그런 주문에는 또 야살스럽게 다시 뽑아서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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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2012/04/15 23:21
1. 놀이를 하나 제안하겠다. 남들이 이미 백번 천번 한 얘기라면 당신과 나는 그 얘기를 하지 않는 놀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가진 게 없는 처지라 걸 게 없지만 이 놀이에 참여하면 저절로 각자의 dignity를 지켜내게 된다는 게 주어지는 부상이라면 부상이다. 

2. http://youtu.be/v-55wC5dEnc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진지한 동시에 굉장히 웃길 수도 있다는 걸 고작 7분이라는 시간 안에 증명하고 있고, 모든 등장인물이 철저히 각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에도 너무 자연스러워 거의 즉흥 연기처럼 보이며, 계속해서 호보포브적 태도를 보이는 닉 드팔로(게이 코미디언 옆에 앉아서 이런 얘기 그만하자고 하는 사람)가 실제로도 공화당 지지자에 인종주의자라 역할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는데다, 게이 친구로부터 'faggot'의 어원을 듣고 숙연해진 분위기를 "
Okay, thanks, faggot, we'll keep that in mind." 라고 일갈하는 닉의 마무리가 그야말로 홈런이기 때문이다. 닉이 "알았어 호모새끼야." 하고 끝마치지 않았다면 난 이 장면을 별로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에피소드가 방영된 이후 루이스 CK는 'faggot'의 어원은 그게 아니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에 CK는 "여기서 중요한 건 언어학적 탐구 따위가 아니라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fuck around 하면서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면 불편해 나눌 수 없을 화제를 꺼내놓고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는 것이다" 라고 답했다. 나꼼수가 웃기다고 배를 잡는 어린 양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내 너희들에게 루이스 CK를 알게 하리라. 

3. 누구나 특정 분야에 한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전문가다. 대학 때 아무리 공부를 안했어도 제 전공에 대해서는 남보다 고유명사 몇 개라도 더 알고, 적성에도 안 맞는 걸 마지 못해 다닐 뿐인 회사라 한들 그 업계 일에는 평균보다 밝은 것과 같은 이치다. 취향과 열의가 발현되지 않는 영역조차 몇년 구른 가닥이 있으면 저절로 지식이 쌓일진대, 좋아하는 분야라면 여러 말 할 것도 없다. 대다수가 관심 갖지 않거나 무지한 영역에서 이런 사람들의 역할은 더 빛이 난다. 집요하게 성과와 흐름을 정리해놓고 이게 왜 재미있는지, 혹은 아름다운지 매력적으로 요약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애호가가 확 느는 경우가 있고, 도시 전설 수준으로 퍼져있는 잘못된 정보를 올바로 교정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본인의 지식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예다. 

그런데 자신의 양식이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그 분야에 대해 본인만큼 알지 못하거나 애정이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로를 느끼며 짜증을 내는 사람을 종종 본다. 
전문가가 삽시간에 찌질해지는 순간이다. 논쟁이 붙어 아는 바에 의거해 의견을 피력하거나 누구의 정보가 더 정확한지 가늠하는 상황이라든지, 나꼼수 몇달 듣고 갑자기 정치 고수가 돼서 방자하게 날뛰는 뉴비를 짜증내며 무시해버리는 시사 전문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논쟁과 무시는 문제될 게 없다(특히 후자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내가 말하는 건 자신을 뽐낼 수 있을만한 거리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데, 그것이 기실 본인 레벨에서 가타부타 할 계제도 아니라는 건 감안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주부들이 구민회관에 격주로 모여 개론서 수준의 철학책을 읽으며 인문학 스터디를 하는데 스티븐 핑커가 등장해 그녀들이 철학에 제대로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스터디 책도 '유목적 사유'니 '지평'이니 하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는 걸 보니 한참이나 잘못 골랐다고 조소한다고 생각해 봐라. 혹은 토마스 켈러 같은 경지에 오른 쉐프가 이글루스 음식 밸리를 드나들며 등재된 레스토랑 리뷰와 레시피에 오류가 많다고 꿍얼 거린다고 상상해 보라. 찌질해 보이지 않겠나? 근데 과장이 아니라 진짜 저 따위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 재밌는 건 자신과 같은 수준에 미치지 못한 모든 이의 헛소리와 무지가 짜증난다고 말은 하면서, 초보자들만 모여 있는 공간을 구태여 자주 들여다보며 짜증의 근거를 스스로 마련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길티 플레져라고 보면 되나? 그렇냐고 물으면 또 질색하면서 아니라고 하던데? 그냥 타고나기를 찌질한 인간이라고 보아 넘기면 될까? 그럴 것 같다. 평소 얼마나 인정 받지 못하고 잘난척할 곳이 없기에 저러나 싶어 잠시 애잔하기도 하나 가여운 마음도 잠시다. 이런 유형이 자기보다 공력이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얼마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참 볼 만 하다고만 해두자. 남 까기 좋아하는 주제에 지 까일 때는 죽어라 방어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네 방향으로 달리는 말이 끄는 수레에 사지를 묶어... 여기까지. 아무데서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도 당신이 지닐 수 있는 기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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